줌톡 vol. 1 국악과 졸업생의 해외정착기

(사진설명)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김현채, 가민, 이인보, 김유나

김현채(이하, 현채): 인보씨는 서울대에서 대금 전공으로 학부를 하신 뒤 어느 날 프랑스로 갔다가 연출가가 돼서 돌아오셨어요. 어떻게 프랑스로 가게 되셨나요?

이인보(이하, 인보): 프랑스에 가기 전, 공연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먼저 했던 것 같아요. 당시 예종에는 청소년관현악단 어울림 악단이 있었는데 예술감독이던 원일선생님께서 저희들에게 조를 짜서 공연을 만들라고 하셨어요. 그때 제가 연장자라 조장을 맡았는데 공연 하나를 만드는 데 굉장히 많은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연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죠. 이후 군악대에서 캐나다 퀘백으로 공연을 가게 됐는데 마침 불어를 하는 친구가 필요해서 프랑스 말을 하는 친구가 파병을 왔었어요. 그 친구랑 얘기를 하다 보니 프랑스는 학비도 공짜라고 그러더라고요. 거기에 혹해서 그때부터 프랑스 유학을 알아보기 시작했어요.

현채: 프랑스에서 공부해야겠다고 결심한 뒤 어떤 기준으로 학교를 선택하셨어요?

인보: 먼저 프랑스 뚜르(Tours)라는 지방에서 어학을 6개월 정도 하고, 몽펠리에(Montpellier), 니스(Nice), 파리(Paris) 등 여러 지역에 제가 들어갈 수 있는 음악과나 연극과를 찾아서 여기저기 지원서를 넣었는데 파리 8대학만 돼서 그 곳의 공연예술과를 들어갔습니다. 당시에는 뭘 하고 싶은지 분명하지 않아서 현지에 어느 학교가 맞는지 설명해 주는 어떤 사무실 같은 데가 있어서 찾아갔었어요. 거기서 상담해주는 사람한테 내가 어디 학교를 가야 되냐고 했는데 나도 (내가 가고 싶은 곳을) 모르고 그 사람도 모르니까 나중에는 그 사람이 저에게 화를 냈던 기억이 나요. (웃음)

현채: 한편 가민씨는 인보씨와는 다르게 한국에서 국립국악원 창작악단 소속으로 활동을 활발하게 하시다가 미국으로 가게 되셨는데, 어떻게 갑자기 활동 무대를 옮기게 되셨어요?

가민(이하, 가민): 미국으로 갑자기 옮긴 건 아니었고요, 사실 굉장히 서서히 오랜 시간에 걸쳐서 옮기게 됐어요. 2007년도에 유네스코에서 주최하는 세계 평화를 위한 큰 공연 프로젝트에 한국전통악기 연주자를 1명 파견해달라고 국립국악원에 요청이 들어왔었는데, 그 기회에 저 혼자 뉴욕과 파리에 가게 됐어요. 그래서 2주 동안 파리와 뉴욕, 정말로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과 새로운 음악을 만드는 공연을 했죠. 저는 그 공연에서 정말 너무 큰 영감을 받았고, 뉴욕의 환경이나 그 때 경험했던 음악과 무대 모든 것들이 너무 좋아서 다시 꼭 와야겠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돌아갔어요. 그런데 당시에는 제가 국립국악원 단원이기도 했고, 또 서울대학교에서 박사 과정도 막 시작했었던 시기였기 때문에 몇 년이 그냥 흘렀어요. 이후 2010년도에 뉴욕에서 레지던시 프로그램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지원을 했죠.

현채: 이후 뉴욕 레지던스 경험이 가민씨의 연주자 삶을 바꿔놓은 중요한 터닝 포인트였던 것 같은데요, 그 기간을 어떻게 보내셨는지, 어떤 것을 지원받았고, 레지던스 중 하루 일과는 어떻게 진행됐는지 궁금해요.

가민: 그 레지던스 프로그램은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기관에서 펀드를 지원해주고 뉴욕에 계시는 민족음악학자 하주용 선생님께서 내용을 기획하신 거였는데, 3개월간 학교를 방문해서 한국음악을 소개하고 연주하는 활동 외에는 각자 자유롭게 자기가 하고 싶은 것들을 마음껏 할 수 있었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현지 연주자들을 만나는 데 시간을 많이 활용했고, 공연을 보면서 뉴욕에서 일어나는 공연 예술 활동이 어떤지 배우는 시간을 보냈어요. 음악가들을 일단 만나서 교류하기 시작하고 나서는 그 관계가 확장되어 그 친구가 또 다른 뮤지션을 또 소개해 주고, 또 그걸 통해서 공연도 하게 되고, 그 공연을 보러 온 다른 관객 또는 다른 아티스트들이랑 또 교류하게 되면서 계속 경험들이 쌓이게 되었어요.

현채: 가민씨의 이야기는 국내에서 이미 완성된 아티스트가 해외로 진출해서 바로 새로운 커넥션들을 만들고 활동영역을 확장해가는 모범적인 사례로 보입니다. 반면 인보씨의 경우 학부 졸업 직후 유학을 가셔서 전공도 바꿔서 긴 공부 시간을 가졌는데, 예술가로서 본인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있으셨을 것 같아요.

인보: 맞아요. 또 연출이기 때문에 더욱 힘든 부분이 있었던 것 같아요. 예를 들자면 대금을 내가잘 하려면 대금 연주를 하면 되잖아요. 방에 들어가든 친구랑 하든 책을 보고 연습을 하면 되는데, 연출은 연습할 수 있는 길이 별로 없어요. 이건 사람이 있어야 되고 일단 공연을 만들어서 한 번 무대에 올려야지 연습이 되는 건데 그 연습이 어려우니까 힘들었어요. 사실 아직도 그런 과정이긴 합니다. 제가 딱 이런 색깔을 가지고 하는 것은 아니고 이것저것 해보고 있는 중이고 조금씩 찾아가는 중이에요. 사실 예술이 뭔지 딱 답이 나왔으면 끝났죠 뭐(웃음). 그걸 못하니까 우리가 계속 말하고 있는 거잖아요, 예술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현채: 줌톡 신청자분들께 사전 질문을 받았는데요, 많은 사람이 궁금해한 부분입니다. ‘어떻게 생활비를 마련했느냐’하는 부분이에요. 인보씨는 프랑스 유학시절 생활비는 어떻게 마련하셨나요?

인보: 유학 초기에는 가족의 도움을 받기도 했는데 언제까지 계속 부모님께 돈을 받아야 되나 고민이 들었어요. 5년차부터는 만두가게에서 주 1-2회씩 몇 년간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지금 따지고 보면 파트타임으로 짧게 일 해서 얼마 벌지 못했던 것 같은데(웃음). 학비는 무료라 1년에 30만원 정도의 학생보험료만 냈고 10년 전 기준으로 부모님께 유학 초기에 월 700유로(약 100만원) 정도의 지원을 받으면서 그중 집세로 400유로정도 냈던 것 같아요. 또, 프랑스는 학교에서 주택보조금이 조금 나옵니다. 한 때는 셰어하우스에서 450유로 가량 지불하기도 했는데 제가 결혼하고 아이들도 낳으면서 이후에는 집을 구매했어요. 

현채: 한국에서는 대부분의 아티스트가 연주활동을 하더라도 학교에 나가거나 레슨을 하는 등의 교육활동을 병행해야 생계 유지가 되는데, 가민씨는 뉴욕으로 완전히 옮기신 후에 아티스트 활동 만으로도 현지 생활이 가능하셨나요? 

가민: 물론 힘들죠. 그러나 한국과 다른 점은 분명히 있어요. 예컨대 한국에서 연주활동을 했을 때는 악단활동, 개인 연주활동, 또는 강의, 이렇게 뭔가 눈에 그려지는 정해진 것들이 있었어요. 그렇지만 뉴욕에서 제가 느낀 것은 예술계가 굉장히 크고, 또 매우 다양한 활동들이 있다는 것이에요. 한국은 그 당시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국악인 또는 음악인들이 많지 않았고, 악단에 들어가지 않으면 커리어를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해야 할 만큼 예술계에 자리가 없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여기는 오케스트라에 들어가지 않아도 자기 개인활동을 하면서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아요. 그리고 예술계 자체가 꼭 오케스트라나 학교 위주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예술계 전체가 굉장히 탄탄하고 크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거기서 내가 뭔가 하고 싶다 마음먹고 도전을 하면 길은 있어요. 쉽지는 않고 물론 월급 받는 강사나 단원과는 다르지만 분명히 시장은 있어요. 

현채: 아쟁연주자인 유나씨는 한국에서 국악과 졸업 이후 정가악회와 모던가곡 등 팀 활동을 하다가 미국으로 유학을 갔는데요, 미국으로 간 이유가 무엇인가요?

김유나(이하, 유나): 저 스스로에게 다양한 기회를 주고 싶었어요. 예술가의 재교육이랄까, 나 자신을 좀 더 성장시키자 하는 마음이었어요. 한국에서 28-29년을 살았는데 그 환경이 지루해지더라고요, 계속 나에게 새로운 것이 필요한데 무엇이 있을까 하다가 환경을 바꾸자는 생각을 헸고 그냥 거침없이 무대뽀로 왔어요. 국악을 10년 넘게 하면서 세상에 아름답다고 하는 많은 예술들을 제가 단순히 한국음악의 어법으로만 알고 있다는 것이 좀 아쉬웠어요. 그런데 유학을 오게 되면 제한된 시간과 재화 안에서 새로운 것을 배워야 하니까, 제가 잘하고 잘 알고 있는 음악을 굳이 안 해도 되는 새로운 기회가 생기게 되는 거죠. 그래서 처음에 왔을 때는 그 동안 내게 습관처럼 배어있는 것, 내 몸에 묶여 있는 것인 국악은 하지 말고, 다시 음악의 비기너가 된 것처럼 새로운 것을 스펀지처럼 쫙쫙 흡수를 해보자는 마음으로 왔어요. 

현채: 유나씨가 처음 다닌 학교는 뉴잉글랜드 콘소바토리(The New England Conservatory, NEC)고 그곳에서 최고연주자과정까지 마친 후에 지금은 버클리(UC Berkeley)에서 석사과정을 또 하고 있죠. 각 학교에서 무슨 전공으로 어떤 공부를 하셨나요? 그리고 각 학교의 엔트리 과정과 선발 기준도 궁금합니다. 

유나: NEC에서는 Contemporary Musical Arts라고 하는 학과에서 현대 즉흥음악과 현대 작곡을 공부했고요, 지금은 버클리의 Global Jazz Institute라는 곳에서 “글로벌 재즈”라고 하는 비교적 최근에 새롭게 등장한 하나의 재즈 갈래를 하는 학과에서 공부하고 있어요. 글로벌 재즈는 전통적인 재즈와는 달리 악기가 뭐가 됐든 다양한 배경의 뮤지션들을 뽑는데요, 학생을 뽑는 기준은 학교마다 다를 것 같아요. 왜냐하면 학교마다 음악적인 지향점이 너무 달라서 저도 같은 보스턴(Boston)에 있는 두 학교지만 길 하나 두고 매우 달라서 놀랐어요. 그래서 기준은 잘 모르겠지만 미국대학의 입학과정은 다 똑같은 것 같아요. 자기소개서와 CV나 Resume를 쓰고 이 학교를 거쳐서 결국 어떤 것을 성장시키고 싶은지를 써요. 그리고 제가 지원했던 두 학교는 영상을 3개에서 5개 정도 제출했는데, 어떤 음악을 하라고 제시를 해줘요. 블루스 한 곡, 웨인 쇼터(Wayne Shorter)나 오넷 콜맨(Ornette Coleman) 곡 한 곡, 자작곡 한 곡, 편곡한 곡 한 곡 이런 식으로 조건들이 있어서 거기에 맞춰서 제출하면 돼요.

현채: 그걸 다 아쟁으로 한 거죠? 그런데 우리가 국악과를 다니면서 훈련이 되어 있는 부분들은 아니었을텐데. 어떻게 준비하셨나요?   

유나: 저는 졸업하고 팀활동을 하면서 송라이팅을 했었어요. 그리고 저희가 대부분 중고등학생 때부터 음악을 하고 대학교까지 나오면 어느 정도 많은 장르의 음악들을 접한 거거든요. 졸업한 사람들은 그 배경 안에서 이제 자기가 하고 싶은 음악을 넣어서 작곡을 해보는 거에요. 저도 얼토당토않게 했지만 뭐든지 시도해보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안 하는 것보다 시도해보고 그리고 미국에 와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입시에 대한 태도였어요. 저희는 입시에 완벽을 추구하잖아요, 음 하나 틀리면 땡, 이런 식으로. 그런데 여기는 그 틀림이나 부족함에 대해서 엄격하지 않아요. 오히려 그 음악 안에서 그 사람의 잠재력이나 예술성을 보고 이 사람이 아티스트로서 어떤 비전이 있는가를 봐주는 것 같아요. 

현채: 세 분께 공통적으로 드리고 싶은 질문입니다. 아티스트로 살아간다는 것의 한국과 해외의 차이에 대해 이야기해 주세요. 먼저 프랑스는 어떤가요?

인보: 기본적으로 음악하는 사람이 아주 많습니다. 동네에 콘소바토리가 하나씩 있을 정도로 많아요. 그래서 예를 들어 파리 필하모닉 같은 공연을 하면 일단 매진을 기본으로 생각하고 기획을 해요. 워낙 음악 인구도 많고 시민적으로 음악에 대한 관심이 높다 보니 보러 오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래서 또 아마추어와 프로에 대한 갭도 큰 것을 느꼈어요. 예술활동을 많이 해도 각자 음악과 관계없는 생업을 하면서 동시에 음악활동을 하는 인구가 압도적으로 많아요. 그런데 그걸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예술계에 그 층이 탄탄하게 존재하고 있어요.

가민: 저는 뉴욕에서 활동하는 것이 저한테 더 잘 맞고 재미있고, 또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한국에 있던 시절을 생각해보면 악단 활동이나 개인독주회 하는 것 외에 그다지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시장이 없다고 느껴졌어요. 또 음악은 서양음악 클래식 아니면 국악으로 이분화되어 있는 면이 있는데 제가 뉴욕에서 경험한 음악들은 클래식 보다는 뉴욕의 재즈 아니면 다양한 각국의 민속음악들이었어요. 미국은 전세계 음악가들이 활동하는 곳이라서 다양한 문화, 다양한 시장, 다양한 예술이 공존해요. 새로운 것에 열광하는 관객이 있고 예술가 스스로도 새로운 것을 찾으려고 하다 보니 확실히 판이 더 넓다는 생각이 저는 들었어요.

유나: 저는 프리랜서 아티스트로서 한국이나 미국이나 별반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해요. 결국에는 내가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은가 그리고 내가 예술인이라면 나는 어떤 방향이나 어떤 삶을 지향하나 하는 고민을 했던 것 같아요. 한국에 있어도 독립된 예술가로서 살아가려면 정말 치열하게 살아야 되거든요. 매년 지원사업 쓰고 매년 같이 작업할 수 있는 좋은 동료를 찾아야 되고 그 시기에 어떤 컨셉이 가장 유행인지 이런 것도 살펴야 되고. 그 모든 것들을 다 치열하게 살펴야 한다는 점에서는 미국도 결국은 똑 같은 것 같아요. 조금 더 시장이 넓고 다양한 것을 허락해 줄 수 있는 환경에 내가 왔을 뿐, 해야 하는 노력은 똑같다고 저는 느껴요. 


  • 김현채: 서울대학교 국악과 졸업, 음악박사 (DMA), 서울대학교 국악과 강사를 역임하고 현재, 미국 시카고한국전통예술원(KPAC) 상주예술가로 활동하고 있다. 스트링웨이 대표이다. 

  • 가민: 서울대학교 국악과 졸업 및 음악박사 (DMA), 국립국악원 창작악단 수석을 역임하고, 뉴욕 레지던스 아티스트 및 다수 펠로우쉽 수여한 후 현채, 미국 UCLA 민족음악과 한국음악 프로그램 디렉터와 솔리스트로 활동 중이다. 

  • 이인보: 서울대학교 국악과 졸업 (학사), 파리 8대학 연극과 졸업 (학사/석사), 파리 8대학 음악과 수료 (석사), 프랑스에서 13년 간 유학 및 예술활동 후 한국으로 돌아와 ‘리퀴드사운드’의 연출로 "긴:연희해체 프로젝트" 등의 작품을 제작했다.

  • 김유나: 서울대학교 국악과/음악이론 졸업 (학사), 미국 뉴잉글랜드 콘소바토리 졸업하고 현재, 미국 버클리 음악대학에 재학하고 있다.